P.M 5:30

2007.02.1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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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꼬마들만 쪼로록 앉아있는 그 옆에 주저앉았다.
저 아줌만 뭐야?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지만
완전 구석, 아무도 날 발견하지 못할 것 같은 공간 자체가 맘에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서점 바닥에 앉아 책장을 넘겨본지가 언제였는지...

눈에 든 책은 현직 초등 교사 송언씨가 쓴 <선생님, 쟤가 그랬어요>.
2학년 담임 교사가 하루하루 아이들과의 생활을 일기형식으로 쓴 책인데 요즘 애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까...호기심이 생겼다.

술술~ 책은 잘도 넘어갔다. 그런데 이 담임 아저씨는 "몇살이예요?" 라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선생님은 백오십살이야" 라고 장난을 치고...한 술 더 떠 "난 도사 선생님" 이라는 황당한 거짓말을 하는 거다.

급기야..."난 도사 선생님이기 때문에 뭉게구름을 타고 학교 운동장을 한바퀴 돌 수 있다" 고 뻥을 친다.

요즘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영악한 아이들이 그걸 믿을까?
"에이 거짓말? 말도 안돼" "이렇게 젊은 백오십살이 어딨어" "주름도 없는데..."
"증명해 봐요" "구름 타봐요~타봐요"

난 몇번 장난치다 실토할 줄 알았다. 그래야 '올바르고' '진실하고' 심지어 이런 '책'도 내는 선생님이잖아. 뻥도 저런 황당한 뻥을....그런데 담임 아저씨는 절대 굴하지 않는거다. 몇번 거짓말이 탄로 날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는데...그때마다 퉁퉁치며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고...

미심쩍어하던 아이들도 점점 하나둘 속아넘어가기 시작한다. 우기는데 장사없다고 하더니....그리고 처음부터 선생님 말을 믿었던 순진한 아이들은 다른 칭구들도 선생님을 믿는 눈치가 보이자 왕 기뻐한다. "내가 뭐랬어!" ㅋㅋ 역시 애들은 애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 진지하고 선생답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야...차근차근 답해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애들보다도 훨씬 개구지게 골려먹기만 한다.

머, 이런 선생님이 다 있나...이런 생각이 머문 것도 잠깐!
윤구병 선생의 추천사처럼....어느 순간 그 묘-한 매력에 빠져드는 거다.

동화같은 상상, 순수한 꿈...아이들의 이런 생각과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가능한 것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정말 이런 건지도 몰라...

급기야 나도 도사 선생님이 갖고 싶어진다...
체육시간에 줄 잘 서면 우리 선생님이 뭉게구름을 타고 운동장 한바퀴를 돌아주실꺼야. 얼마나 멋지고 신기할까~ 그리고 내가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면 나도 태워주신댔어~ 친구들한테도 말해줘야지~ 신.난.다

문자가 울린다. 한 반 정도 읽었을까....끝까지 다 보고 싶지만 자리를 떠야 할 시간이다.

엉덩이가 뻐근하다....이내 머리도 뻐근해진다...
드디어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해야 할 시간...
어떤 논의를 할 수 있을까...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하는 회의론부터 해 볼 수 있을 때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어줍잖은 책임감까지 온갖 잡념들이 머리 속을 뒤흔들어 버린다.

2003년 12월의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
변한 거라곤 그땐 떠나는 자의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남겨지게 될 자의 입장이랄까.
그리고 나이 4살을 더 먹었다는 것...

안다.
한해 두해 세해 네해...한 공간에 머무는 동안 해도 해도 잘 되지 않고, 꼬여만 가는 것들....
그것이 사람을 얼마나 질리게 하고 지치게 만드는지...
지나온 시간만큼 켜켜이 쌓여간 분노와 상처들이...어느 한순간 탁- 회복불능 상태로 맥빠지게 한다는 것도...이럴 땐 옆에서 그 누가 어떤 말을 해도...아무 것도 입력되지 않는다는 것도...

"선생님, **가 **를 때렸어요. **는 **를 좋아한대요. 쟤가 저한테 욕했어요."
'순수한' 고자질을 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을까? 흰 분필로 칠판에 '떠든 애들' 이런거 적던 시절

그러면서 우리는...뭐가 서로 다른 점인지, 뭐를 하면 남에게 상처를 주는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배워나갔을텐데....

서른이 훌쩍 넘은 나,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산 선배들....
이 꼬맹이 고자질 아이들만도 못한 게 분명하다....



* Misia - Everything
- 7분 가까이 되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땐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잘 만들고 잘 부른, 평범한 발라드 곡일 수도 있는 이 노래를...
- 게다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왜 그랬을까...
-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여전히 좋다...
Posted by pun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