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_쿨하게 한걸음

2008. 3. 2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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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미의 두번째 책 '쿨하게 한걸음'

3월 초 유미에게 책이 나왔다는 문자를 받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세가지였다.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진열을 기다리던 따끈따끈한 책을 박스에서 꺼내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사는 일. 주위 사람들에게 책 나왔다고 꼭 사서 보라고 입소문 내는 일. 그리고 천천히 한줄한줄 재미있게 읽어주는 일.

지난해 9월에 나온 첫번째 책 '판타스틱 개미지옥'도 좋았지만 이번 책은 정말 기대 이상이다. 아무리 친구가 쓴 소설이라도 재미가 없거나 취향에 안맞으면 어쩔 도리가 없을텐데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 괜찮은 소설이라고 자신있게 권할 수 있다. 좋아하는 소설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제 서유미라고 말할 것 같다. 그녀의 속 깊고 반듯하고 맑고 착한 글이 좋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겠구나, 기분좋은 예감이 든다.

책을 읽는 내내도 그랬고 덮은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하루하루 맥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게 불안하고 조바심나면서도 딱히 되는 일도 안되는 일도 없이 그렇다고 대충 살고 싶지도 않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막막하고 두렵기만 한 주인공은 바로 내 모습이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그래 전부 내 탓만은 아닌거야, 하는 안도감에 지친 마음은 다독거려지기도 했지만 그래서 또 그만큼 속상하고 외롭고 허했다. 중간중간 어떤 대목에선 피식 웃다가도 몇 장을 못 넘겨 가슴이 울컥하다가 무너져내렸다. 오늘도 지하철이 아니라 빈 집에 혼자 있었더라면 몇번은 대성통곡 했을 것 같은 울렁증에 사로잡혔다. 서럽게 미치도록 펑펑 울고 싶었다.

베란다에서 울던 주인공 연수의 아버지는 어쩌면 내 아버지인지도 모른다. 같이 살지 않아 못봤을 뿐이지 내 아버지도 얼마나 많은 눈물을 훔쳤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몇번의 굴곡으로 고된 삶을 살아온 엄마의 상처는 지금 얼마나 아물었는지, 어쩌면 그 멍이 더 커진 건 아닐까, 문득 생각하니 나는 아는 게 별로 없다.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엄마가 웃어보이니 괜찮은 거겠지, 그렇게 다 잊은 척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난 지독한 슬럼프에 시달리고 있다. 숨 막히는 긴 터널 속을 헤매고 있다. 어디쯤 왔는지도 모르겠다. 언제쯤이면 빠져나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예측도 못하겠다. 방법도 모르겠고 출구도 안보인다. 주인공 연수처럼 성장통이라고 하기엔 쪽팔리고 허망하다. 예전엔 대책없이 바닥을 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렇게까지 힘들어해야 할까, 머리로는 위로해도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매사가 무기력하고 변덕부리며 치솟고 가라앉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온 정신을 놓아보니 이런 거였겠구나 알 것도 같다. 바닥까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이 상황을 도무지 손쓸 수가 없다. 나이 먹고 뒤늦게 뭔 짓인가 싶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정체된 내 삶이 쿨하게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쓴웃음과 막막함이다. 나 자신을 내가 믿을 수 없는 배신감 같은 것.

망설임과 두려움을 잘 이겨내고 쿨하게 일보 전진하길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간절히 응원한다. 절대로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막을 내리게 하지 않을 것이란 그녀의 다짐을 믿는다.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는 우리들에게 불쑥불쑥 감기 같은 병이 찾아오면 앓을 만큼 앓고 나서 천천히 털고 일어나길 기다려보라고. 그 시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평생 완치되는 병도 아니지만 불치병도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

솔직히...지금 이 혼돈과 정체의 시간은...견디기 힘들지만...
그래도...한걸음...쿨하게...

Posted by pu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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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1 02: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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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이 책을 반드시 사서, 읽어봐야겠네요.
  2. 효피디
    2008.03.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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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 맥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게 불안하고 조바심나면서도 딱히 되는 일도 안되는 일도 없이 그렇다고 대충 살고 싶지도 않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막막하고 두렵기만 한 주인공"....나잖아...OTL...빌려줘 ^^
  3. 2008.03.21 12: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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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oin 꼭 사서 읽어봐 ^^ 니 취향이라면 잘 맞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남자들이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네. 잘 사냐...
  4. 2008.03.21 12:1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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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OTL 그렇다니까...다들 그런거였어. 나만 그런게 아니라규 --. 낼 가져갈게욤 ^^
  5. 2008.03.2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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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책 추천은 언제나 감사! "마음사전"도 잘봤어. ^^
  6. 2008.03.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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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사전 좋았죠? ^^ 쿨하게 한걸음도 강추!
  7. 2008.03.2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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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다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애. 부럽다.
  8. 2008.03.24 01:2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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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럽긴...제대로 하는게 있어야는데..
    선배...나 금욜에 한 말...휴...진짜 심각하다니깐 ㅜㅜ
  9. 보라마녀
    2008.04.11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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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 맘에 들어요...봐봐야지..
  10. 2008.04.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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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야~ 원하면 저자 싸인도 받아줄 수 있어 ^^
  11. 인수
    2008.05.08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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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정말 좋아.
    커피숍에서 울었어.
  12. 2008.05.0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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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져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