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2007. 3. 31. 01:45

10대와 20대 초반을 보냈던 내 첫번째 방은....아주 좁고 답답했지만 혼자만의 독립된 장소로서는 손색이 없었다. 라디오를 듣고, 다이어리에 메모를 적고,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음악을 듣고...공부를 하고...밤새 전화를 하고....

그리고 20대 중후반은...개인 공간 없이 지냈다. 모든 곳이 철저하게 공용 공간이었다...
처음엔 큰 문제가 없었다...내 방은 없었지만 내 영역은 있었으니까...내 책과 개인소지품이 늘 보관되는 내 영역.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오로지 '나만의 개인 공간'이 없다는 건...심각한 갈증을 유발하기 시작했다...시간이 갈수록 점점 답답해져갔다...인간이란 다같이 더불어 사는 존재이지만...한편으론 고독을 즐길, 혼자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므로...

노래를 부르고 부르다 드디어 내 방이 생겼다...처음엔 아주 원대한 계획을 세우려고 했으나....사는 게 늘 그렇듯...이사 직전 까지도 별 신경도 못쓰고...부랴부랴 필요한 가구를 들이는 정도 밖에는 달리 뾰족한 걸 하지 못했다...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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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책장과 CD장. 책상과 의자. 서랍장. 그리고 컴퓨터와 오디오. 전화기.

근데 내 방이 생기면 실컷 맘컷 혼자만의 무엇을 향유하리라 생각했던 것도...그닥 뭐가 없이 흐지부지다...(어쩌면 그저 막연한 환상일 수도 있겠지...)
이사 와서 몇달은 정말 내 방이 생겼다는 걸 거의 실감할 수가 없었다...집에 와서 가방 놓고...아침에 일어나 가방 들고...이게 내 방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이니까...

결국 시간(여유)의 문제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밤 늦게 귀가하는 생활 패턴 상...집에 오면 후다닥 씻고 정말 꼭 해야 할 일만 간단 정리하면...푹 퍼져 잠들기 바쁘다....다음 날 살아내려면...어쩔 수 없다...그래도 늘 모자라는 게 잠이다...평균 5시간?

옛날에는 밤도 꼴딱 꼴딱 잘 새고...뭣보다 밤 시간을 좋아하고...밤에 뭘 하는게 더 잘되고...어렸을 때부터 시험공부도 밤에 벼락치기 하는 스타일....
그래서 다 커서도 직장 다니면서도 보통 새벽 2시나 3시 이렇게 늦게 자는 습관이 있었고...그래도 다음날 쌩쌩했고....(나 같은 사람은 아침형 인간은 절대 못하고 또 싫어...)

그러나 그것도 체력이 받춰져야 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생각할 수록 너무나 슬픈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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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쯤 전화하면 늘 자고 있는 칭구한테 어쩜 그러냐고 구박(?)도 마니 했었는데...이젠 남 이야기할 때가 아니지. 드라마 본다고 누워서...이제 저 광고 끝나면 드라마 시작해...하다가 눈 뜨면 드라마 다 끝나고 밤 12시였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거...ㅜㅜ

그러니깐 결국은 음악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고, 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음악 같은 경우도...청소할 때 음악 틀어놓고 흥얼거리는 것 정도를 빼곤...딴 일을 메인으로 하면서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틀어놓는 일은 거의 없다...왜냐면 책 볼 땐 그 책에만 집중해야 글이 들어오는 것처럼...음악도 그 음악에만 집중해야 만 소리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렇듯 문제는 '시간'이다. 투자할 시간...
그러나...다들 그렇듯이...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빠듯하게 살고 나면...개인에게 줄 시간이 별로 없다...아무리 쪼개고 쪼갠다 해도...내어줄 시간이 없다...그저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잠 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 뿐이다...

한 2년간 8시간 근무를 칼 같이 지켰던 시절이 있었는데....그땐 개인이 활용할 시간이 많았다는 거. 덕분에 요가도 몇달 해 보고...회화 학원도 쫌 다녀보고...퇴근 후 약속도 편하게 잡고...음악도 많이 뒤져서 찾아듣고...

게다가 8시간 칼퇴근이 가능하다는 건 업무의 연장성이나 강도가 그만큼 약하다는 뜻. 퇴근하고 나면 땡! 머리속이 말끔 한게 다음날 출근하기 전까진 걱정도 고민도 생각도 할 이유가 없다. 지금으로썬 상상도 불가한 일. 야근은 자발적으로 필요하고..퇴근 후도 주말도 늘 머리 속은 복잡하게 엉켜 개운치 않고..나와 일전을 벌이는 대상을 항상 주시해야 하고..밤낮 주말 없이 전화벨이 울려대고..인터넷을 뒤져 뉴스나 정보를 늘 체크해야 하고..TV를 보는 시간조차도 업무의 연장이 되고..

게다가 언제 어디서나 (연결돼 있고 접속할 수 있으니) 일할 수 있는(그래서 강요당하는--.) 기술의 발달, 디지털 시대가 아닌가. 휴대전화는 일찌감치 사람을 얽어매왔고....이젠 집 역시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또 엄청나게 쏟아지는 뉴스와 정보들...하지만 그에 대한 신뢰도는 점점 바닥으로 떨어진다. 도대체 어떤 정보를 믿어야 하는지? 나한테 필요한 정보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남들이 다 아는 연예계 가십(뉴스로 포장된)을 모르면 안될 껏 같은 생각....남들이 아는 정보를 나도 알아야 한다는 긴장감...그리고 블로그를 갖고 있으면 '1인 미디어'로써(니까) 뭔가 의미있고 정보가 될만한 글들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아니 도대체 왜!!!)....

피곤하다...갈수록 사람들의 삶을 퍽퍽하게...불행하게 한다. 기술의 발달이 사람을 편리하게 한다? 도 일면 맞겠지만 그만큼...아니 그 보다 더 불행해지는 측면...(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읽고 있는 책 <싸이버타리아트>를 덮고 나면 훨씬 구체적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암튼 일부러 애써 그러는 건 아닌데...요즘 들어 다시 야행성 기질이 살아나고 있다...
잡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걸 수도 있고...일시적으로 몸 상태가 비정상적이어서...버티고 있는 건 지도 모르고...또 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이것저것 주절주절 거리는 것도 한 원인일테고...

얼마나 갈런지는 모르지만...내 방, 내 공간을 더 철저하게 향유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은 언제쯤 만족스런 결과를 내놓을런지...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차 한잔, 누워서 책도 읽고, (일 말고 따른 관심사로) 서핑도 하고, 뭉쳐버린 머리를 풀어주고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재충전의 공간...하루 단 30분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아무 것도 없는' 그런 공간....이 아둥바둥 서울에 발 담구는 동안은 글쎄...꿈으로만 남게 될까...



Posted by pu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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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3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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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아요. 문제는 '갈증', 간절히 원하면 이뤄지기는 하는데...이미 얻는 순간 그 가치는 '뚝'. ㅎㅎ 언니만의 공간을 보니 저도 부러운걸요. 날씨 참 얄궂은 주말이네요. 이번 주말은 푹 쉬어요. 운동 다녀오고 블로그 끄적거리고, 책도 읽고 저녁엔 동창들 만날 예정이에요. 남들 쉴때 쉬니까 좋은 그런 날이에요.
  2. 2007.03.31 23:1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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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쉴 때 쉬는 거...그게 왜 좋은지를 알려준 것도 '거기'인 거 같아. ^^ 그나저나 황사조심!! 마스크 쓰고 다니는 사람도 이젠 자주 보이더라...정말 기어이 마스크까지 써야하는 날이 오다니...끔찍하지 않냐. --.
  3. 2007.04.0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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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반대로 20대때보다 지금이 더 체력적으로도 좋아지고, 심적으로도 많이 안정적이 되 가는 거 같아. 그리고 무엇보다 매우 규칙적으로 하루를 살고 있고 그것에 만족하고 있다. 질풍노도의 20대때는 왜그리 밤에 할 일이 많고 생각은 늘 복잡했었는지 몰라.
  4. 2007.04.03 00:1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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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철이 단단히 든 것 같은데...^^
  5. 효피디
    2008.04.2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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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내 방이 없는 나로서는 무척 부러울 뿐..^^